I. 벌거벗은 임금님
언제나 항상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좋은 자재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하는 탄식 섞인 얘기가 자주 들린다.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 오로지 건축가들만이 자재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건물을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건 쓸 만 하군.’ 할 수 있는 재료가 적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듬직하다고 할까. 건물 주인이나 이용자가 안심할 수 있는 그런 건축 자재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현대 건축에서 깜빡 속아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방의 벽에 훌륭한 테크를 썼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다가가서 만져보면, 테크 무늬와 색조를 교묘히 흉내 내어 인쇄한 벽지이다. 발전한 인쇄 기술로 인하여 조금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테크와 벽지가 구분하기 힘들다.
일본 사람들은 목조 건축에 오랫동안 친숙해 왔기 때문에 요즘 세워지는 빌딩들도 어느 한 부분에 소위 화실이라는 것을 만들어 두는데 그 기둥이나 들보 및 천장 재목들은 자연목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역시 인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냉난방 설비가 되어 있는 빌딩 안에서는 진짜 목재를 사용하게 되면 나무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조 재료를 쓰게 되면 그럴 염려가 없을 뿐 아니라, 재료비도 절약이 된다. 결국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건축 행위는 자연과의 건실한 교감을 실현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고 해야겠다. 근대 이후의 건축은 그 이전의 오랜 건축 역사가 그랬듯이 천연 재료에 필요한 가공을 한 다음 그것을 인간의 지혜와 체력과 솜씨를 가지고 다듬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그 방향성을 어느 시점에선지 포기해버린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II. 미장공.
지금까지 생태를 알아본 벌들은 무사로 치면 신기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과학적인 살육 꾼들이라도 집을 짓는 데는 별로 솜씨 있는 일꾼이 못 된다. 벌들의 주거는 조금 한심하다. 지하의 갱도와 그 끝의 방이 통로 하나, 구멍 하나, 굴 하나로 되어 있지만 모양새는 상관하지 않는다. 도통 예술 감각이 없다. 곡괭이를 휘두르고, 지렛대로 젖히고, 갈퀴로 굵기는 하지만, 흙손으로 예쁘게 마무리하는 재주는 없다. 하지만 황다리호리병벌로 말할 것 같으면 전문 미장이 뺨칠 만큼 회반죽치고 석재 다루는 데 능숙하며 어떤 때는 바위 위에서 어떤 때는 바람에 건들거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비바람 속에서도 집 짓기를 한다. 이들은 사냥과 건축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황다리호리병벌이 집 짓는 것을 보면 기본 건축 재료는 잘 건조된 훍가루 이다. 이 흙가루는 절대로 습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 황다리호리병벌은 ‘습기로 바람이 들어간 회반죽은 쓰지 않는 회반죽 기술자 같은 ’감식안‘을 지니고 있어 자기가 핖요로 하는 잘 마른 흙을 채취하여 사용한다. 그 흙가루에 자신들의 침을 섞어 이기면 건축에 쓰는 횟가루 반죽이 되는데 이것을 말리면 흙벽돌 같이 단단해져서 아무리 비가 와도 허물어지지 않는 견고한 건축 소재가 되는 것이다.
황다리호리병벌의 공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기초가 되는 돌 위에다 위치를 결정하고 그 위에 두께 3mm쯤 되는 바퀴 모양의 울타리를 만든다. 그 위에다 횟가루 반죽을 쌓아 올리는데 사이사이에 알갱이들을 박아 넣는다. 돌은 바깥쪽으로 삐죽삐죽하게 불거질 수도 있으나 새끼들이 자라는 소중한 공간의 안쪽으로는 절대로 돌이 노출되지 않도록 회반죽을 발라 매끈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황다리호리병벌 미장공이 솜씨를 과시하는 부분이다. 차츰차츰 위쪽으로 층을 쌓으며 공사가 진행되는데 전체적으로 항아리 형태이므로 몸통 부분이 가장 굵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가늘어졌다가 주둥이 부분에서는 벌이 기어들어 가기 힘들 만큼 좁아진다. 거기서부터는 다시 넓어져서 둥지는 결국 항아리 형태로 완성된다. 황다리호리병벌의 건축은 뛰어난 미장공이 빚어낸 예술가적인 건축임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III. 미학을 아는 벌
“촌스러운 이 작품(둥지)은 비바람을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끄떡없다. 칼로 긁으려 하면 칼이 도리어 부러진다. 파브르는 젖통 모양을 한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오기도 하고 우툴두툴한 표면을 한 이것이 고대의 환상열석과 거석들로 에워 쌓인 무덤 같은 것을 연상케 한다.” 하고 그 의외의 풍모와 일종의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훌륭한 돔 건축이다. 파브르의 말을 빌리면 사람은 돔을 만들 때 공사 중의 벽돌이나 돌의 무게를 지탱할 형틀을 만들어 공사를 하지만 이 벌은 ’원형 지붕을 허공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황다리호리병벌의 둥지는 목재나 석재가 드물고 흙과 모래가 풍부한 지역의 인간 건축물을 너무나 많이 닮았다.
“황다리호리병벌의 돔 건조물은 하나의 예술 작품인데 그것을 만든 벌도 자기의 걸작이 횟가루 밑에 가려지는 걸 아쉽게 여길지는 모르겠다. 환상열석을 세운 자는 자기 작품이 마음에 들어 그것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스스로 제 솜씨에 만족감을 느낀 일은 없었을까? 곤충에게도 미학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황다리호리병벌에게서는 자기 작품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경향이 보이는 듯하다. 집(둥지)은 무엇보다도 우선 견고한 주거, 침범할 수 없는 흙집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방어력을 약화하지 않으면서도 꾸밀 수 있다면 거기에 무관심할 건축가가 있을까? 그것을 부정할 건축가는 없을 것이다.
파브르는 자신의 추론, 즉 황다리호리병벌에게는 일종의 ’건축미학‘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솔직한 감상의 ’증거‘고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항아리의 꼭지 부분이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로 빚어낸 것 같이 세련된 목을 한 암포라의 입 형태‘ 라는 점. 이 얇은 술잔 모양의 입에는 아주 정성스러운 세공이 필요한데 ’왜 이처럼 정교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둘째: 황다리호리병벌은 왜 둥지의 벽을 만들 때 넣는 돌로 석영을 좋아하는가? 석영의 아름다움은 반투명성에 광택이 찬란하여 석회암 알갱이와 비교할 바 아니다.
셋째: 달팽이 집을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빈 달팽이 집으로 만들어진 둥지는 ’ 끈기 있게 손으로 다듬은, 껍질로 된 상자‘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분명히 장식 욕구와 관계되는 무엇이 아니겠느냐고 파브르는 말한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정사 조의 장식과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동물의 건축에서 보이는 ’장식‘에 대한 욕구에 대해서, 황다리호리병벌의 집 짓는 과정을 좀 더 상세하고 정확히 알기 위해 일본에서 사냥벌 연구의 일인자인 이와타 구비오의 ’항아리 만드는 벌‘ 항목을 참고하고 싶다. “벌은 항상 건조한 점토질 흙(찰흙)을 물에 운반해 연화하여 연초로 만들고, 이 진흙 공을 열에서 마흔 알갱이를 가져다가 한 개의 항아리로 만든다. 어느 경우이든 벌은 항아리 외부에서 항아리 주둥이에 수직이 되는 선을 회전축으로 하여 줄곧 얼굴을 그 방향으로 돌리고 몸 전체를 원을 그리듯이 좌우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면서 진흙 공을 띠 모양의 벽 위에 펼쳐 놓는다. 물레를 돌리는 대신 제작자 자신이 도는 것이다. 이때 큰 턱과 혓바닥을 가진 아가리를 흙손으로 하여 항아리 벽 내면에 대고 안쪽으로 굽힌 앞발을 외면에 대어 내면에서 가해지는 흙손의 압력을 버텨낸다. 이 원의 반지름을 달리함에 따라 항아리 모양은 마음대로 바뀔 수 있다.“
이렇게 황다리호리병벌의 집은 항아리를 만드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빚어낸 작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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