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장식’의 다시 태어남
요즘 건축에 ‘장식’을 부활시키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 현상을 뒤집어보면 지난 반세기 가까운 기간에 건축가의 설계실에서는 “건축에는 장식이 필요 없다, 낭비다.”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는 이야기다. 한 시대 전의 건축에는 으레 따라다니던 아칸서스 잎의 돋을새김이나 당초 무늬 패턴 같은 것이 건물의 안과 밖으로부터 싹 제거되어 버렸다. 역사에서의 ‘근대’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사회 전체의 움직임 속에서 ‘근대건축’이 남긴 미학적 경향에 대한 반성이 일고 그러한 정서를 배경으로 “장식을 제거한 것이 과연 건축을 위해 잘한 일이냐?” 하는 물음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1) 경제적인 요청: 어떻게든 건물을 싸게 합리적으로 생산하겠다는 경제계의 요구가 장식을 부정하는 요청의 근원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2) 사회적 수요의 후퇴: 장식을 추구하던 사회 계층이 근대 사회의 출현과 동시에 차츰 세력을 잃어 갔음을 가리킨다.
(3) 재료, 구조의 변화: 재료, 구조의 변화는 근대에 와서 등장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니 철골 구조니 하는 새로운 재료와 구조 이론은 짜 맞춘 기술이 등장하여 미친 영향을 가르친다.
(4) 미학적인 이유: ‘미학적인 이유’란 한마디로 말해 건축의 표현이 구상적인 형태로부터 추상적인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을 말한다. 특히 그 추상성은 순순한 기하학 형태의 활용이라는 방향을 지니고 있다
II. 정사조
장식을 하는 새로서 ‘정사조’의 이름은 아주 유명하다. 물론 그 장식 행위를 인간의 건축 또는 그 밖의 디자인에서의 장식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사조가 빚어내는 건축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장식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붉은별정사조는 번쩍번쩍 빛나는 ‘보석’으로 벽면을 메우며 들에 피는 꽃을 갖다 꽂기도 하고 색채가 선명한 나무 열매를 마당 가에 늘어놓기도 한다. 뛰어난 실내 장식 디자이너로서의 정 사조를 봄으로써 부활 문제가 논의되는 인간의 장식 행위에 대한 새로운 시점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정사조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만 사는 새로서 생물학자들의 추정으로는 19~20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사조가 행하는 건축 디자인과 그에 수반된 장식은 종류에 따라서 상당한 변화를 보이는데 집을 짓고 장식을 하는 것은 모두 수컷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사실로써 알 수 있듯이 정사조의 디자인 행위는 이성의 관심을 유도하는 성적인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다. 수컷은 자신이 만든 ‘방’에 암컷을 끌어들여 자신이 장식해 좋은 장소에서 사랑을 수행하겠다는 목적을 깆고 있다. 따라서 그 방은 사랑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아무튼 그들의 건물이나 장식은 이성 간의 사랑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III. 장식의 달
파푸아정사조나 하바시정사조 같은 경우는 땅 위에 구축물을 전혀 세우지 않고, 단지 지표면의 지름 1~2미터 되는 땅을 다듬어 놓고 양지식물이나 대나무 잎 또는 그보다 넓적한 나무 잎사귀들을 깔아 그곳이 ‘사랑의 장소’임을 암시해 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각기 종류에 따라 고유한 디스플레이를 하는 셈이다. 아름답고 현란한 색깔의 날개를 과시하는 새도 있고 멋진 볏을 뽐내며 으스대는 새도 있는데 정사조는 제각기 정성껏 디자인한 지상 시설로써 하늘에서 오는 방문객인 암컷을 유혹한다. 이러한 유혹이나 과시의 방법이 어떤 종류에는 나뭇가지를 쌓아 올린 것이 하나의 특징이 되고, 또 다른 종류에는 뒤집어서 배열해 놓은 나뭇잎이기도 하다. 겨우 그 정도의 차이다.정사조의 장식 행위를 이야기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디자인 능력이 최고로 뛰어난 붉은볏정사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기니에 사는 붉은볏정사조 둥지는 짚이나 나뭇가지를 모아 반구형으로 쌓아 올리는 것인데 솜씨가 대단한 경지를 보인다. 우선 원형의 기단 중앙 부분에 굵은 원기둥이 세워진다. 이 원기둥을 회랑으로 에워싸고 회랑의 절반 정도를 돔형 지붕으로 덮는다. 나머지 절반은 지붕 없이 열려 있다. 옆에서 바라보면 안쪽에서 연결될 두 개의 터널 입구가 좌우로 보이는데 이 터널의 옆과 앞이 붉은볏정사조의 뛰어난 디스플레이를 보여 주는 무대가 된다
IV. 과시
‘과시’란 말을 과학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물이 생식 또는 위협을 목적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또는 크게 보이려는 태세를 취하는 것’이라 씌어 있다. 또 다른 사전에는 ‘동물이 위협 또는 구애할 때 다른 개체에서 행하는 신호 행동’이라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한 ‘태세’나 ‘동작’ 또는 ‘신호’의 구체적인 예로서는 공작의 수컷이 구애할 때 그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는 행동이라든가 고양이가 상대를 위협할 때 털을 빳빳이 일으켜 세요는 장면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 밖에도 무수한 과시 행위를 관찰할 수가 있다. 특히 조류의 경우는 대체로 수컷이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그들은 그 깃발의 아름다운 색채와 요염함을 암컷에게 과시한다. 수컷 중에는 또 일종의 춤 또는 노랫소리를 더해서 구애하는 놈도 있다.
V. 구애 적 디자인
과시하라는 말이 생물학상으로는 위협 내지 성 충동에서의 과시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지만, 디자인이나 건축 분야에서는 ‘디스플레이 디자인’이니 해서 전시를 위한 상점, 전시회장, 진열장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 사조류의 수컷이 암컷을 맞아들여 주둥이 끝에 꽃을 물고 고개를 흔들며 춤으로 과시를 하는 것 같은 공간을 마련한 쪽의 성이 상대편 성에 대하여 자기 성적 매력을 강조해 보이는 따위의 직접적 행동은 이제 거의 퇴색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과시를 위한 소도구와 대도구를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건네주는 유통 과정에 크게 이용하여 다분히 비유적이지만 상업적인 춤이 진지하게 행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디자인 정비는 단순히 점포 디자인에 국한하지 않고 그래픽 디자인이나 사진, 공업 디자인, 나아가서는 건축이나 도시로까지 확대되어 그 결과로 부어스틴이 말하는 ‘이미지의 시대’를 초래한다. 아무튼 디스플레이라는 행위는 건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디자인의 본질을 해명하는 매우 중요한 핵심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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