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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재미난 건축이야기

바벨의 집

by 아셀라2 202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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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어떤 반성


지구 위에 사는 생명이 만드는 둥지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러한 생물의 한 종류이면서도 자기만은 특별하다고 여겨 온 인간의 ‘둥지,’ 곧 건축이나 건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동안 점점 강렬하게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동물의 둥지와 인간의 집은 원래 동일한 생물학적 필요에서 발생한 것인데도 왜 이다지도 다른 것이 되어 버렸을까.?’ 하는 점이다. 예컨대 동물의 둥지와 인간의 건축에 쓰이는 재료의 문제를 보자. 일본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건축은 빌딩이라 부르는 일부 대규모 건조물을 제하고는 거의 모든 건축에 자연대를 사용하였다. 물론 자연 재라 하더라도 인간의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조금씩 축적된 지혜에 의해 다른 동물이 하지 않는 가공은 되고 있었다. 나무는 제재로 제목이 되고, 흙은 구워져서 기와가 되거나 벽돌이 되며, 돌은 켜서 벽째나 포석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가공’이라면 동물도 어느 만큼 시도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예컨대 어떤 종류의 벌은 둥지 틀기 활동의 재료로서 나무껍질의 섬유를 이빨로 씹어 펄프를 만들고 그것을 침으로 이겨서 종이 비슷한 것을 만들어 사용하는가 하면 꿀벌은 몸에서 밀랍을 분비하여 정교한 수직 벌집 판을 만든다. 이러한 재료는 자연에서 채취하여 나름의 ‘가공’이 가해지지만 자연대로서의 재질감은 충분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벽돌이나 기와를 사용하는 인간의 건축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철강, 유리, 시멘트 그리고 플라스틱 따위의 신재료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게 되자 사정은 일변했다. 자연에서 채취된 원재료는 공업 생산의 공정 속에서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정제되거나 가공되어 재료로서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후 석유화학 공업의 급속한 발달로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오늘날 건축 재료로서 건물의 여러 부분 가구 집기로 사용되는 아크릴, 염화비닐,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수지 제품이나 합성 고무 제품의 경우, 과연 몇몇이나 이를 생산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채취한 원재료가 석유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까?


건축의 근대화란 건축의 공업 생산화 과정일 뿐이다. 이 목표에 따라서 건축 재료 또한 공업 제품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왔다. 바꿔 말하면 재료를 생산하기 위하여 고도의 기술이 개입함으로써 재료의 자연대 의존도는 점점 희박해졌으며 그 결과 인간 건축과 다른 동물 둥지의 거리가 더욱더 멀어졌다. 우리가 앞에서 보듯이 동물의 둥지는 어떤 것이든 간에 이 지구 위를 지배하고 있는 인력에 대한 실로 미묘하고도 정교한 균형 감각에 의해 구축되었다. 동물에게는 그들 나름의 ‘구조학’이 확립되어 있다. 인간의 전통 건축 역시 그랬다. 그런데 근대에서 현대에 걸친 공학 기술은 우주선이 달리 그 밖의 행성을 향해 지구의 인력권을 벗어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 위에 존재는 하면서도 그 인력이나 중력의 지배를 초월한 것 같은 용맹함으로 건물을 자립시키려 한다. 그중에서도 마천루라 부르는 초고층 대형 건조물이 그러한 학자나 기술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듯이 지금 한창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갈라놓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가 이러한 거대 건축의 구조적 안전성을 구조 기술자의 프로그램에 따라 보증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프로그램을 엄밀한 계획표에 따라 추진해 가는 원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합리성의 추구라는 근대적 과제에 대한 도전이 틀림없지만 결국 그것은 건축 생산의 경제성을 어느 만큼이나 높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수렴될 것이다. 바꿔말하면 상품으로서의 건축 공간을 얼마나 싼 값에 대량 생산하고 그것을 공급하여 얼마만큼 이윤을 내느냐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논리를 단지 초고층 건축 같은 현대적 도시 경관의 상징적 건물에만이 아니라 정반대되는 것, 예컨대 ‘미니 개발’ 이라 할 만한 열악한 주거 환경의 건설에도 똑같이 아니 더욱 가혹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II. 무너지기 시작한 ‘환상’

동물의 둥지와 인간 건축과의 괴리가 이처럼 확대되기만 하고 옛날처럼 이 둘을 하나의 시야 속에 수렴하는 길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오늘날의 일본 건축과 도시의 건설 상황을 보면 거의 절망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듯 나약한 자의 당혹감 따위는 아랑곳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다만 이 경우의 ‘앞으로’라는 것은 빛나는 미래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합리성과 경제성의 추구 혹은 거대화의 실현이라는 ‘’이상‘이 하나의 벼랑 끝을 향하여 ’앞으로‘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바벨탑‘은신의 분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근대 건축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몇 가지 공통된 이상을 선언하였다. 민주적 집단주의, 공업화, 기계적 아름다움에의 열성, 도시에의 열성, 그리고 미래에의 열성이 그것이었다, 이는 훌륭한 시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대다수를 노스탤지어로 계속 이끌 것이다.피터 블레이크는 미국의 건축가이며 평론가인데 건축 저널리즘을 통하여 활약하였고’ 근대 건축 운동‘을 강력히 옹호해 온 인물이다. “건축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시대을 막론하고 그 모든 관계자-건축가만이 아닌-를 이처럼 창조적으로 만들고 파괴적으로 만들고 지치게 만든 시대는 없었다. 지금은 쉬어야 하는 때다.” 블레이크는 근대 건축이 표방한 ’환상‘ 예컨대 ’기능‘, ’오픈 플랜‘, ’초고층 건물‘, ’이상 도시‘, ’이동성‘, ’형태‘ 가 결국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이렇듯 잘못된 ’근대 건축의 신조‘를 시정하기 위한 일곱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바벨탑의 전경


첫째: 초고층 건물 건축의 일시 정지
둘째: 현존하는 건축물 파괴의 일시 정지
셋째: 고속 도로 건설의 일시 정지
넷째: 건축 업자가 건축물을 책임지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률 제정
다섯째: 조닝의 일시 정지
여섯째: 거대한 계획을 축소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규모로 계획을 변경
일곱째: 건축 교육의 근본적인 재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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